
마애석불과 석탑을 찾아 남하3리
남하리 마을 중 제일위 언덕에 위치한 마을
남하3리는 마애석불과 석탑이 있다. 이들 모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제197호로 각각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고 있다.

마애석불과 석탑
남하3리는 마애석불과 석탑이 있다. 이들 모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제197호로 각각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고 있다. 남하 증평시내에서 남하리행 버스를 타고가면 버스종점이 남하3리이다.
종점이 남하4리이니 버스타고 졸다가 마을을 지나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마을사람들은 출발지에서 종점까지 내달은 기사아저씨의 휴식시간만큼 손님을 기다리는 버스의 대기시간이 여유 있어서 버스경유노선에 속한마을보다는 버스타기가 용이하지 않을까.
마애석불과 석탑을 찾아가는 길은 종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마을 할머니가 가르쳐주셨다. “이짝으로 쭈욱~ 가다가 저짝으로 가면 산으로 가는 길이 있어유 그리 곧장 몆 발짝 가면 거기가 거기유.” 눈감고 들으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손짓을 따라 알아듣고 이짝으로 저짝으로 몆발작 옮기니 정말 ‘여기가거기’다. 참고로 산길로 접어드는 할머니의 몇 발작(걸음)은 100m 남짓 되는 거리이다.

도착하고 보니 마애석불과 석탑은 한곳에 모여 있다. 석탑은 석재로 건립한 불탑(佛塔)이다. 우리나라 석탑은 백제 때부터 기원 하였으며 목탑에서 발전하여 왔다. 우리나라의 불탑은 목탑(木塔)·전탑(塼塔)·석탑·모전석탑(模塼石塔)·청동탑(靑銅塔)·금동탑(金銅塔)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1,300기가 넘는 대부분의 불탑이 석탑으로서, 한국 불탑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렇듯 석탑이 그 주류를 이루게 된 까닭은 질 좋은 화강암이 풍부한 우리나라의 자연적 조건과 일찍부터 돌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도나 중국을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고 한다면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석탑은 탑의 기초가 되는 기단부와 탑의 층을 이루는 탑신부, 탑의 지붕을 이루는 상륜부가 기본적으로 구성되어 축조 되는데 증평군 남하리의 삼층석탑은 기단은 없고 바위의 윗 부분을 평평히 다듬고 네모난 한 장의 대석(臺石)을 놓아 탑신(塔身)을 받고있는 특이한 구조를 하고있다.
이 탑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탑신의 1·3층 몸돌은 각각 한 돌로 되어있고, 2층 몸돌은 1층 지붕돌과 한 돌로 조성되었으며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높게 새긴 점이 특징적인데, 네 귀퉁이의 추켜올림과 잘 어울려 안정감을 준다.
다음으로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도지정유형 제197호)은 남하리삼층석탑 북서쪽 암벽에 위치하며 약3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암벽의 3면에 모두 5구의 불·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는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은 중앙에 본존불과 좌우에 보살을 조각한 1면이 있고 그 암반의 북면에 여래입상이 별도로 새겨졌다. 삼존불이 있는 바위의 남쪽 앞 정면 삼각형의 바위에는 한쪽 다리만 올리고 생각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마애불상군의 전체 높이는 1.14∼2.98m이며, 본존불의 높이는 2.98m, 여래입상의 높이는 2.53m, 반가사유상의 높이는 2.53m이다.
옛날에 청렴한 주학자(周學者)가 살면서 후진들을 교육해 선비들이 많이 났다고 하는 남하3리는 남하리 마을 중 제일위 언덕에 위치한 마을이다. 완만한 언덕 몇 굽이. 마을사람들은 지형(地形)에 순응하며 언덕과 골짜기에 과수원과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