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옹기가마터 창동리
옹기점이 있어 점촌이라 일컬어 지는 마을
증평읍 시가지를 관통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신동리와 접경을 이루는 창동리 도로가는 현대식 건물이 빼곡하여 증평의 중심상권임을 보여준다.

옹기점
물레, 방망이, 수레, 두개, 근개, 밑가세질 소리 토닥이던 옹기점. 화로, 시루, 물동이, 파내기, 옹배기, 투가리, 항아리 등 옹기장이가 가마불을 이레동안 쉬임 없이 피워내어 옹기를 굽고 나면 옹기장수들은 그것들을 지게에 짊어지고 산 넘어 들 건너로 팔러 다니던 시절은 아득하다.
갖가지 옹기를 짊어지고 옹기 팔러 다니는 옹기장수의 발걸음은 정처도 없어 사람 사는 어느 곳이든, 사람 지나는 어느 길이든 찾아 나선다. 그 시절 옹기장수의 다리품 값은 얼마였을까? 식구들 때 거리 걱정에 허기달래는 국밥 한사발은 고사하고 지게시름 달래는 탁배기 한사발에 김치 한 조각 우적일 수 있었는지...
그 옛날 장터 곁의 옹기점은 먹고살기에는 지장이 없었겠다. 옹기 굽는 가마하나에 옹기를 진열할 점포하나면 그만이었을 옹기점. 기억에서 멀어진지 오래이며 그 터마져 남아있지 않다.

점촌
증평읍 창동 일대를 증평사람들은 지금도 점촌이라 부른다. 점촌은 오래전부터 옹기점이 있어 일컬어진 마을 이름이다. 옹기점과 가마터가 있었던 곳은 지금의 창동 951-9번지 문화연립주택 자리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창동의 옹기집은 증평에서 가장 오래된 옹기집이었다 한다.
전통지명이 점촌인 창동은 행정의 중심지이며 도시민의 주거지역이자 증평 중심 상권지로 변모하였다. 증평의 주거혁명이라면 과할까?

증평지역에서 주공아파트가 1호로 들어선 곳이 창동이며 증평군청과 증평읍사무소가 소재하고 있는 곳도 이곳 창동이다.
증평읍 시가지를 관통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신동리와 접경을 이루는 창동리 도로가는 현대식 건물이 빼곡하여 증평의 중심상권임을 보여준다. 그 뒤로는 일반주거지역으로 오래된 집들과 함께 아파트며 다세대주택, 고급스럽게 지은 일반 주택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으며 창동의 보강천변은 36국도가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