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중한 벗, 은행나무가 있는 용강1리
마을 사람들의 고향생각 속에 묻어 있을 용강1리 은행나무
대처에 나가 지내는 이 마을사람들의 고향생각 속에 묻어있을 용강1리 은행나무는 언제부터인가 마을 사람들의 소중한 벗이 되었다.

용강1리 은행나무
낮은 언덕에 위치한 용강1리는 용강리에서 제일 작은 마을이다. 새로 지은 경로당 앞 너른 마당은 여름내 농사져서 수확한 농산물을 말리고 고르기에 좋은 장소이다. 땅김이 오르지 않고 볕을 받아 적당한 열을 발산하는 시멘트 바닥은 고추며 콩이며 들깨, 참깨 등 타작하기에도 좋고 말리기도 좋아 수확작업용 기능성바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때가 가을이니 널어놓은 벼가 마당 가득 차지했다.
용강1리 경로당을 마주보는 언덕 위를 바라보면 은행나무 고목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수령은 400년, 1982년 11월 16일 군(郡)나무로 지정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70여년 전인 1930년,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베어질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향교신축공사의 기둥재료로 쓰기 위해 은행나무를 베어가려 하자 주민들은 모두가 협심하여 이를 막아주어서 은행나무는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부터 마을사람들은 협동이 잘 되었다는 후문이다.

내 곁에 오래 머문 것들의 소중함은 평소에 모르고 지내다가 어떤 계기가 되어 비로소 깨닫는 일이 다반사다. 조상대부터 지금까지 마을사람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은행나무는 마을의 상징이자 마을사람들의 오랜 벗이 되었다. “우리어머니는 뜨거운 물을 수챗구멍에 버릴 때도 짚을 덮고 버렸다.”, “짚을 덮어 뜨거운 물을 버리는 뜻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온갖 미물들이 데어 죽을까 염려되어 물이 식어 흘러가도록 하는 어머니의 고운마음이었다.” 어느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回想)은 우리민족의 정서였다.
땅바닥에 누워있는 돌 하나 일으켜 세우고 정성을 들이는 우리네 민속. 그것은 무지(無知)의 소산이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의 고운 심성인 것이다. 용강1리 사람들이 은행나무를 지키고자 하는 뜻은 오랜 세월을 마을과 함께 살아온 정에 대한 배려일 것이며, 자연에 대한 경외(敬畏)의 마음일 것이다.
대처에 나가 지내는 이 마을사람들의 고향생각 속에 묻어 있을 용강1리 은행나무는 언제부터인가 마을사람들의 소중한 벗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