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용문(登龍門)의 터 용강3리
충효예의(忠哮禮儀)의 근본을 간직한
‘용문(龍門)’이라 한 뜻은 용터에 자연촌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입신출세(立身出世)를 기원하는 뜻에서 등용문에 이르고자 마을을 용문이라 지었다 한다.

'용문'이라는 마을 지명
용강(龍江)3리 마을 어귀. 마을유래비가 용강3리임을 알린다. ‘용강3리’라 새겨놓고 그 아래 세로쓰기로 ‘용문(龍門)’이라 한 뜻은 용터에 자연촌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입신출세(立身出世)를 기원하는 뜻에서 등용문에 이르고자 마을을 용문이라 지었다 한다.
그렇다면 용강3리는 한마디로 등용문(登龍門)의 터라 할 것이다. 마을 이름을 지은 뜻이 이럴진데 행정지명(行政地名)에 그 이름이 묻히는 것이 안타깝지 않을까. 마을사람들은 삼백육십년 전부터 불리어오고 있는 ‘용문‘이라는 마을지명을 용강3리의 마을 표석(表石)에 적어놓아 그 유래를 전하고 있다.
“칠보산의 정기받은 용문마을 동쪽 산의 형세는 쌍용의 모습이요. 이 산맥의 정기 받아 이 건너 저 건너 바라보며 사는 바깥용문이 옛날 선대 약 三六○년 전부터 불리어 오고 있는 바깥용문리(外龍)에 사는 우리는 자랑스럽다.
후손들의 충忠 효哮 예禮 의儀 근본이 될 수 있는 옥구장씨 가문의 효행孝行 효열孝烈 정문이 우리를 더욱 자랑스럽게 한다. 우리가 태어난 바깥용문리가 자랑스러워 이 비를 세우노라.”

장용기효자와 그의 부인 구씨효부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효각
용강3리는 용강1리와 3리 중간에 위치하는 언덕에 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 유래비를 지나 마을로 향하는 길목. 길 왼쪽에 효자효부문(孝子孝婦門)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효자효부문은 장용기 효자와 그의 부인 구씨 효부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효각이다. 그 옆에 참배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서기 2004년 4월 25일’, ‘한국효행수상자효도회’가 참배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卑)를 남겨 놓았다.
이 참배비는 ‘한국효행수상자효도회’가 행한 일을 자랑하고자 세워 놓은 것은 아닐 터.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을 되새겨 예의바른 우리네 민족성을 잊지 말고 행하자는 취지의 발로(發露)가 아닐까. 아무튼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참배비는 단순한 기념비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들이 효를 기리며 실천하고 있음을 알리고, 이곳을 찾는이에게 효자효부의 효심을 배워 실천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열녀각
용강3리는 그 외 장환일의 처 곡산연씨의 열녀각(烈女閣)이 자리하고 있다. 옛날 여자학우(女子學友)들은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 물으면 “조강지처(糟糠之妻)요” 하며 거침없이 대답하는 때가 있었다. 남녀평등(男女平等)을 부르짓는 작금의 현실은 그 의미를 무색케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남녀모두 평등을 부르짓는 만큼 이 정신을 살려 서로노력하며 살면 어떨까. 열녀, 조강지처를 가히 여기는 우리네 전통문화를, 그 정신을 남녀 공히 지켜야할 덕목(德目)으로 삼는다면 지금보다는 좀더 아름다운세상이 되지 않을까.
효자효부와 열녀의 이야기가 전하여지는 용강3리에는 이 마을에 전하여 오는 한 시 한수에 고이 담겨 있다.
용터 위에 마을이뤄 등용되길 기도하고
용강들이 풍년드니 석양빛에 더욱 곱다
옥구장씨 터를 잡아 열녀효자 본이되어
마을안녕 빌어보며 풍년가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