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문화유산의 고장 남차1리
보물과 지방문화재를 나누어가진 큰집과 작은집
영산신씨 덕재공파의 17세손 충익공 영성군 예조판서 신경행(辛景行)의 묘소가 있는 곳인 수현마을 초입에 다 다른다. 타성을 가진 사람들이 토박이 영산신씨들과 어울려 사는 평화로운 시골마을이다.

숯고개 가는길과 남차리 입구
증평읍내에서 513번 지방도를 따라 미원방면으로 길을 잡아 1번 군도(君道)로 좌회전하여 접어들어 자동차로 약3분 남짓 거리. 영산신씨 덕재공파의 17세손 충익공 영성군 예조판서 신경행(辛景行)의 묘소가 있는 곳이자 신경행 직계집성촌인 수현마을 초입에 다다른다. 지금은 시대변천에 따라 타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 토박이 영산신씨들과 어울려 사는 평화로운 시골마을이다.

남차1리 풍경
수현(壽峴)마을은 전통지명이고 행정지명은 남차1리이다. 수현마을은 장수하는 마을이라 하여 목숨 壽자 고개 峴자를 써서 壽峴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봉천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인 숯고개(炭峙)가 마을이름으로 잘못 개명되어 내려오다가 1980년 충청북도의 지명 개정으로 마을 이름을 다시 찾았다.
영산신씨들이 모여사는 증평군 증평읍 남차1리인 수현마을과 괴산군 청안면 문방리는 이웃동네이지만 증평군과 괴산군의 접경지여서 숫고개를 사이에 두고 소재군((所在郡)을 달리한다. 이들 두 마을 영산신씨의 큰집은 괴산군 청안면 문방리요 작은집은 증평군 증평읍 남차1리인 수현마을이다.

제영산신씨 묘역
영산신씨 덕재공파 종중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와 조상묘소가 각각 보물과 도지정문화재로 지정지정되었다.

신경행묘에서 바라 본 청연사일대
보물로 지정된 것은 신경행(1559∼1623)과 관련된 문적으로 모두 8종 9점이다. 2004년 8월 보물1380호로 지정되었으며 보물의 정식명칭은 ‘신경행청난공신교서및관련문적(辛景行淸難功臣敎書및關聯文籍)’으로 명명 관리되고 있다. 큰집이 이 유물을 관리하고 있으니 괴산군의 보물이 되는 것이다.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유물이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가문의 영광이면서 지역의 영광이기도 하겠다. 큰집, 작은집이 소재 군을 달리하고 있건 말건 가문으로서는 문제될 바 없겠지만 지역의 역사문화를 빛내는 가치로서 따져 본다면 지역민으로서 아쉬운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신경행과 관련된 문적이 보물로 지정 된 다음달 9월 신경행의 묘가 충청북도 문화재로 지정(충청북도 기념물 132호 충익공 신경행 묘소) 됐다. 이 문화재의 소재지는 영산신씨 덕재공파 작은집이 있는 수현마을. 결과적으로 보물은 큰집이 도지정문화재는 작은집이 나눠가진 셈이 된다.

기원사 주불전
수현마을엔 또 구계서원터와 풀경소리 그윽한 기원사라는 사찰이 있다. 구계서원 터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구석산 자락 서당골이라 불리우는 산중(山中)이 있는데 이곳엔 글소리가 높았던 구계서원의 유허가 남아 있다. 마을과 지척에 있으면서도 지세와 경관 또한 아늑하고 조용하여 한눈에 봐도 서당이 들어설 자리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구계서원 터에서 산 쪽으로 길을 잡아 약 200m 정도 오르면 주불전 하나에 산신단하나 요사하나 객사 하나가 전부인 아담한 절이 있다. 창건연대(創建年代)라 하면 너무 거창한 말일까? 이 절집이 처음 들어선 것은 약 10년 남짓이라 한다.
기원사 무량수전 앞은 산의 경사에 맞추어 터를 닦고 3개의 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단과 계단을 자연석 쌓기를 하여 잘 다듬어진 터의 정갈함과 변화무쌍한 자연미가 잘 어울려 산사(山寺)다운 면모가 살아난다.
절집의 내력이야 세월이 흐르면 고찰(古刹)이 될 것이니 내력이 일천하다고 아쉬울 것은 없을 터 수현마을의 기원사는 경관 아늑하고 전통사찰의 운치를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처럼 얘깃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수현마을은 구석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두르고 있고, 구석산 맑은 물이 흐르는 고장이다. 수현마을은 예로부터 농업이 발달하여 담배 인삼 고추 쌀농사가 주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