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활을 쏘던
사정(射亭)이 있는 사곡2리
사청리와 방곡리의 이름을 따서 지은 마을
본래 청안군 근서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청리(射廳里)와 방곡리(芳谷里)의 이름을 따서 지은 마을 이름 사곡리(射谷里).

말세우물이 있는 사곡2리
본래 청안군 근서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청리(射廳里)와 방곡리(芳谷里)의 이름을 따서 지은 마을 이름 사곡리(射谷里). 사곡리는 1, 2, 3리 등 모두 3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마을 중 제일 작은 마을 사곡2리는 35세대에 1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고장이다.
옛날 활을 쏘던 사정(射亭)이 있어 이름을 사청리(射廳里, 새칭이)라 불렀다는 사곡2리는에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물이 넘쳤다는 말세(末世)이 있다. 마을 어귀에서 곧장 마을로 들어간 길을 따라 가면 먼발치부터 우물이 보인다. 이 우물이 세 번 넘치면 말세가 온다는 전설이 전하여 오고 있는데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이 우물이 넘쳤고, 우리 민족의 비극 6ㆍ25발발 때도 이 우물이 넘쳤었다 한다. 이제 한번만 더 넘치면 말세가 온다하여 혹여 넘칠세라 들여다 본 우물.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수면이 겨우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으니 안심이다.

옛날 어느 노승이 목이 말라 찾은 집. 아낙은 물이 없어 노승께 잠시 기다릴 것을 청하며 20여리 길을 마다않고 물을 길어 노승에게 드렸다. 아낙의 정성에 감복한 노승은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우물터를 점지하여주고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나며 노승이 아낙에게 전한 이야기. “이우물은 넘치거나 줄어드는 날이 없을 것이외다. 그러나 꼭 세 번째 우물이 넘치는 날엔 말세가 될 것이니 이때 이 마을을 떠나시오.“ 노승의 말대로 실제 나라의 환란을 예견한 이 우물을 귀히 여긴 마을사람들은 직사각 기둥을 3단 쌓기 하여 우물정자로 엮어 놓았으며 우물가에 새겨진 우물유래비는 그 사연을 마을을 찾는이에게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