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못을 파 화재를 다스린 도당1리
금당(金塘)과 좌실(左實) 두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마을
도당 1리는 금당과 좌실 두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도당1리는 금당(金塘)과 좌실(左實) 두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화성4리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34번 국도의 시작점인 화성교를 지나 곧바로 오른쪽 포장도로 진입로에 ‘도당1리’라는 자연석에 새긴 안내판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약 400m를 가다보면 오른쪽으로는 드넓은 금당들이 펼쳐져 있고 보강천과 청안천이 합수되는 안쪽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이 금당이다. 금당들을 마주하고 야트막한 산 아래 마을회관이 들어서 있는 것을 중심으로 가옥들이 밀집해 있고, 벼 건조센터 맞은편에 몇 채의 가옥들이 떨어져 있다.

금당
조선시대 금당은 청안과 사리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현재 마을이 들어서 있는 도로 가를 중심으로 고기집, 포목점, 주막 등 많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특히 금당서원이 있었기 때문에 마을에 진입하는 사람들 중 신분이 낮은 사람은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서 마을을 지나갔다고 한다. 이 마을이 당시 얼마나 번창하였는가는 70년대 말 도로공사를 하는데, 땅에서 수많은 주춧돌이 나왔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금당(金塘)이라는 지명이 암시하듯 이 마을에는 못이 하나 있었다. 옛적 이 마을에는 화재가 자주 발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도사가 지나가면서 못을 파면 화재가 멎을 것이라고 하여 마을에 못을 팠는데 그 후로는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금당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난 듯하다. 못의 물이 많을 때에는 농업용으로 쓰기도 하였으나 물이 점점 메말라버려 쓸모 없게 되자 3년 전 마을 공사를 하면서 못을 메웠다고 한다. 그 못은 현재 마을회관(경로당) 우측에 있었던 것으로 못을 메우고 뚜껑을 덮어놓은 흔적만이 보일 뿐이다.
1997년 신축한 마을회관은 경로당을 겸하고 있어 마을의 노인 분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 건물 앞에는 그 옛날 방송도 확성기도 없던 시절 마을의 대소사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커다란 종이 있다. 그리고 옆에는 76년에 건립한 약 50평 가량의 새마을 창고가 있다.

좌실
금당 북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 좌실이다. 화성교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약 13㎞ 지점에 위치해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의 경로당은 2000년 가을에 건립한 것이다.
회관 앞 논에는 방구배기라 부르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놓여 있다. 주민들은 이 바위를 특별히 위하지는 않지만 마을을 보살펴 준다고 믿고 있기에 마을이 생긴 이래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마을의 지명과 관련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옛날 좌승(佐丞)이 이 마을에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가 하면, 좌실 앞 도로변 주막거리 즉 지금의 버스승강장을 중심으로 술집, 떡집, 밥집, 묵을 파는 집 등이 도로 가에 형성되었는데 과객들이 이 주막거리에 모여 앉아 놀다 간다고 하여 좌실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 당시에는 마차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었는데 도로공사를 하면서 이 주막거리가 사라져 지금은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