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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군

살기좋은 도안!!

풍요로운 도안. 활기넘치는 도안면은 평야와 산천이 조화롭게 발달한 살기 좋은 고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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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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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리 마을 전경

명암 · 국가대란때 바위 울어

우리마을의 역사(歷史)와 지명유래(知命由來)

화성리는 구화리(九花里)와 설도리(城都里)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도안하면 화성리를 의미한다. 마을 뒷산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해 화산(花山,꽃산)을 이루었다고 전하며 마을 앞 개울가에는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고, 앞에 흐르는 맑은 물은 지나가는 길손들이 한번 쯤 취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던 마을이 었다.

<도안현(道安縣)>
본래 고구려의 도서현(道西縣)인데,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도서(道西)로 고쳐서 흑양군(黑陽郡:진천군)의 속현이 됐다가, 고려 초에 도안(道安)으로 고쳤다.
그후 제8대 현종9년(1018)에 청주에 붙었다가, 조선 제3대 태종5년 청당(淸塘)과 도안의 두 고을이 좁고 백성이 적으므로 하배 청안(淸安)으로 고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 또한 태종 13년 읍내 . 동 . 서 . 남 . 북 . 근서면의 6개 면을 관할했는데, 1914년 군 . 면 폐합에 따라 서면은 청주면에 편입되고 그 나머지 5개 면은 괴산군에 편입돼 괴산군의 청안, 증평, 도안의 3개 읍 . 면과 청원군의 북이면 일부와 오창면의 일부지역이 됨.

화산 아래 자리잡은 곡산연씨 세거지
벼슬 얻어 산다하여 자다리로 부르면서
구난 변고 알려주던 울어바우 간 곳 없고
화성다리삼거리엔 마을 번영 다짐하네.

쌍버들가 백사장에 가무놀이 한창이고
살구나무 정자되어 흘린 따 식혀주며
무명비를 세운 곳에 비석촌이 되었구나
옷깃여며 넘나들던 진 모랭이 옥고개.

토박이땅 이름

  • 구궁정 : 서도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귀봉정(歸鳳亭)이 있었다 함.
  • 성도리(城都里) : 위작다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성산에 성을 쌓고 이곳에서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함.
  • 작다리(作多里) : 명암 북쪽에 있는 마을로 위작다리와 아래작다리로 불리워짐. 곡산연씨 종중에 서 연주운이라는자가 사마시에 합격. 진사 작위를 받아 살고 있었다 하여 아래작다리라고 부름.
  • 행정(행화정:杏花亭 ,역전) : 도안역이 소재한 마을로 살구나무정자가 있었음.
  • 비석촌(碑石村) : 본래 구궁정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었으나 현재 가옥은 없고 농경지로 됐음. 이곳에 비문 없는 비가 한개 있었으나 1941년 수해로 매몰됐음.
  • 서당골 : 화성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전에 서당이 있었음.
  • 쌍둠성(쌍정 : 雙井) : 역전 마을 동쪽 하천 건너 쌍버들나무거리 옆에 있던 쌍 둠벙. 그러나 1941년 수해로 둠벙이 묻혔음.
  • 행정고개 : 행정 뒤에 있는 고개, 노암리로 넘어 감.
  • 옥고개(옥현 :獄峴) : 명암리 행화정에서 증평 진모랭이들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이 곳에 감옥이 있었다 함. 비석촌(碑石村) : 본래 구궁정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었으나 현재 가옥은 없고 농경지로 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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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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