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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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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근 이미지
연제근(延濟根:1930∼1950)

6.25한국전쟁영웅, 육군상사

연제근 약력

공은 충북 증평군 도안면 노암리에서 연기봉의 사형제 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도안초등학교 제16회에 졸업했다. 1948년1월30일 애국에 뜻을 품고 경비대에 자원 입대해서 제3사단 22연대 1대대에 분대장으로서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1949년에는 지리산 공비토벌에 참전하여 공은 기발한 지략으로 공비9명을 일망타진한 바 있어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화랑무공훈장과 2계급특진, 부상 및 특별휴가를 받았다.

1950년 6·25사변 당시 3사단 전쟁일기에 의하면 한반도는 금강방어선과 낙동강방어선이 무너져 부산과 포항일부까지 후퇴하여 국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었다. 공이 소속된 3사단 22연대는 형산강 방어선의 주력부대로, 23연대, 26연대는 측면에서 지원부대로 그리고 강건너에는 적의 5사단 10연대, 11연대와 대치상태였다.

50년 9월 1~16일간 치열한 전투 중, 공께서는 12명의 특공대를 조직하여 야음에 도강하여 암벽을 올라가 부상을 입고도 적의 기관총진지를 완전히 격파 시키고, 7명의 분대원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로인해 아군 연대는 형산강을 무사히 도강하여 포항지구를 수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전의를 상실한 적군은 계속 후퇴를 거듭했다.

공은 이렇게 꽃다운 약관의 나이에 구국간성(救國干城)으로 장렬하게 전사했고, 유골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32단지에 안치됐다.
공의 공적으로 인하여 포항사수가 계기가 되어 3사단이 계속 북진했고 당시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한 후 합세하여 9.28 서울 수복을 하고 계속 북진하는데 계기가 됐다.
정부에서는 제50주년 6.25기념 사업으로 국방 군사 연구소에서 공의 애국심과 호국정신이 후세들에게 귀감이 되어, 호국영웅으로 선정했고 총동문회에서 추진하여 모교 정문옆에 2001년 8월 15일자로 흉상을 건립했다.

수여훈장

  • 을지무공훈장 (훈기J000292)
  • 화랑무공훈장 (훈기J025178)
  • 무공포장 (훈기B0002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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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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