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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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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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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군 역사의 부리가 흐르는 자양천(紫陽川)

자양천은 두타산(頭陀山)과 대봉산(大峰山), 이성산(異性酸)에서 발원하여 자양리(紫陽里)와 미륵댕이를 지나 보강천(寶岡川)과 합류하기까지의 길이 약 6km 의 하천을 말한다.

자양천은 우리 증평군 지역 내에서 발원하여 하천을 이루고 있는 삼기천(三岐川), 연암천(硯岩川)과 함께 3대 하천 중의 하나로서 미암골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예부터 이 하천의 상류인 자양리 마을에는 따뜻한 물이 매장되어 있어 추운 겨울에도 샘이 얼지 않는다고 전해 오고 있으며, 물이 맑고 풍부하며 수질이 좋아 지금으로부터 1,530년 전 고구려 장수왕 63년(서기475)에 이지역 인근지역(현재의 미암, 송산, 연탄, 도안면, 중흥, 문암)을 다스리는 물노군(현 진천군) 도서현(道西縣 : 고려태조 23년(940)에 도안현으로 개칭)의 현청(縣聽)이 본하천 주변에 위치하였다. 또한 하천의 중간쯤에는 조선 태종 5년(1405)에 도안현과 청당현이 병합되어 청안현으로 개편되면서 조선시대 주요 교통로였던 시화역(현재 노암1리 시화마을)이 설치되어 그 때부터 증평지역이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로서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당시 시화역에는 역관(驛館)과 많은 역원이 살았을 것이고 교통수단인 말(馬)이 많이 사육되었을 것이다. 이 하천을 연하여 도안현(道安縣)청사(廳舍)가 위치하고 교통 및 통신 중심지로서 시화역의 역사(驛舍)가 있었음은 자양천이 물이 얼마나 맑고 수량(水量)이 얼마나 풍부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료(史料)로 보아서는 자양천은 지금의 증평군을 태동케 하는 근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자양천은 하천의 폭도 좁고 수량(水量)이 적어 이 하천을 중심으로 옛날 1천여년(475년~1,00여년)동안 이 지역의 행정 및 교통 중심지로서 화려하였던 모습을 연상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증평인이라고 자칭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조차도 자양천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지금은 작은 도랑으로 변모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난 2월에 증평군지 편찬을 위하여 향토사전문위원들인 집필위원들과 함께 자양천 일대의 답사를 통해서 조선 태종5년(1405)에 청당현(청안현)과 통합되기 전까지 이 지역 행정을 다스리던 도안현의 현청(縣聽)이 자양천변(미암리 856-1)일대라는 것과 시화역(현 시화마을)이 자양천과 연하여 있었다는 흔적들인 각종 토기편과 청자, 백자편, 기와 등의 유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에 증평·도안지역의 행정을 관할하는 증평군이 설치되고 우리 지역이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로 부각되는 것은 근세에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고 1,505년 전부터 역사적 흐름에 뿌리가 있었음을 고찰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조사·발굴하여 증평군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이들을 연계하여 이성산의 토성과 말(馬)무덤등의 고대 유적사료들을 복원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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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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