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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증평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증평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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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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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山勢)가 순후하고 아름다운 안자산(顔子山 : 晏子山)

안자산(晏子山)은 해발 약 110m의 동산(洞山)으로 두타산(頭陀山)의 TV송신소에서 보강천(寶崗川)을 향해 급경사로 내려오는 산줄기 아래에 나지막해지면서 등고선이 완만한 산자락 중간쯤, 사람의 이마처럼 둥굴 넓적한 모양으로 시원하고 평안한 정감을 주는 작은 야산(野山)이다. 안자산(晏子山)이라고 명명(命名)하게 된 것은 청안현사마소(司馬所) 유림들이 공자의 제자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에 비유하여 안재미 뒷산이 마음씨가 곱고 몸이 약한 안자(顔子)와 같다고 하여 안자산(顔子山)이라 이름을 붙이고 좌구산에서 흘러 증천동에 이르는 삼기천(三岐川)을 증자천(曾子川)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 내려 오고 있으며, 또한 일설(一說)에 의하면 산세가 크고 높은 두타산 아래 곱고 완만하게 내려 앉아있는 형세라 하여 안자산(顔子山 : 안자뫼)이라 부르고 그 산 밑 마을을 안자산리(顔子山里:안재미)라 불렀다 한다.

정조 13년(1789)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기록에 의하면 안자산(晏子山)의 동남쪽으로 송치리(松峙里)와 안자산리(顔子山里)는 청안현(?安縣)근서면(近西面)에 속해 있다가 건양(建陽)원년(1895)에 청안현이 청안군으로 승격되면서 송치리(松峙里)가 송치리와 송오리(松五里)로 나누어지고 안자산리(顔子山里)가 안자산리(安子山里)로 변경되었다. (※참고문헌 : 「구한국지방 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 1912년 간행) 그 후 1914년 일본제국주의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치리(松峙里)와 송오리(松五里)의 송(松)자와 안자산(晏子山)의 산(山)을 따서 송산리(松山里)라 하여 괴산군 증평면에 속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지금의 안자산(晏子山)은 산세가 곱고 아름다워 공자의 제자 안자(顔子) 성품과 같다고 하여 최초에는 안자산(顔子山 : 안자뫼)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나 세대가 흐르는 과정에서 1895년 청안현이 청안군으로 행정구역조정시 안(顔)자가 안(安)자로 뜻과 글이 바뀌어서 그대로 안자산(晏子山)이라고 부르고 있음이 안타깝다. 우리 지역에는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라 지명과, 산, 하천, 마을들의 이름들이 변화, 변경된 것들이 많고 문화유적, 역사들이 왜곡되었거나 미처 발굴이 아니 되어 조명되지 못한 조상들의 얼들이 있다. 우리 증평군은 괴산군으로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고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1,500여 년 동안 현재의 증평군 지역 일부 또는 대부분의 지역이 하나의 행정단위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고 주장하는 것을 역설이라고 배타할 수 없으며, 전문향토사학자들에게 연구 과제를 부여하여 증평군의 정체성을 찾아 확립하는데 그 어느 일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지방자치행정을 구현할 수 있는 자치(自治) 증평군(曾坪郡)이 설치되었다. 집안에 자손들이 잘되어 성공하면 자기 조상의 뿌리를 찾아 비를 세우고 족보를 다듬는 것처럼 우리 증평군도 이제 우리 민의의 의지에 의하여 증평군을 운영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우리 지역의 역사와 조상들의 문화유적을 밝혀 정체성을 확립하고 오늘에 살고 있는 증평군 자치민과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함이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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