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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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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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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음(河陰)봉씨(奉氏)들의 그리움! 망월산(望月山)

망월산(해발459m)은 난(亂)에 쫓겨 봉천리(奉天里)로 피난 온 하음(河陰) 봉씨(奉氏)들이 어린 임금 단종의 폐위에 대한 애절함과 강화도에 있는 조상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고향향수를 달래주던, 충효가 서려있는 산봉우리이다. 하음(河陰) 봉씨(奉氏)들이 산봉우리 정상에서 조석(朝夕)으로 한양(서울)을 향해 폐위된 임금에 대한 예로서 충절을 표하소, 흩혀진 친족들의 안위를 기원하고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 기원하는 곳이어서 일명 망월탑이라 불리어지기도 한다.

이 산은 증평읍 봉천리에서 서쪽으로 약 1km 쯤 떨어진 좌구산 줄기의 산봉우리 중의 하나이다. 이 산을 가려면 증평에서 청안을 지나 청천쪽으로 가기 위해 부흥고개를 오르다 보면 독가촌이 있다. 여기에서 오른쪽에 봉천사 입구라는 간판을 따라 경사가 매우 급한 고개(질마재고개)를 넘으면 봉천리가 나온다. 또 다른 한 방법은 증평에서 율리를 거쳐 물치폭포를 지나 1.5km쯤 가면 봉천리가 나온다. 봉천리는 외봉천리와 내봉천리 2개의 마을로 되어 있는데 망월산은 외봉천리에서 서쪽으로 약 1km 쯤 능선을 따라가면 증평평야와 청원군 미호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확트인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작은 산봉우리다. 교통편은 두 방향이 포장이 돼 있으나 모두 35도 이상의 경사진 도로로 1~2km를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초보운전자는 차량운행을 삼가는 것이 좋으며, 양 방향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도보로 1시간정도 가면 된다. 봉천리(奉天里)는 하음(河陰) 봉씨(奉氏)들이 조선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다음 해인 1457년 이후에 이곳으로 피난 와 살면서부터 지어진 마을이름이며, 따라서 좌구산 줄기에 무명의 산봉우리가 망월산(망월탑)이라 불린 것도 그 후 봉씨들의 충효스런 사상에서 명명되었다.

하음(河陰) 봉씨(奉氏)의 시조는 봉우로 인천시 강화군 하첩면 장저리 하음산(河陰山)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것은 1106년(고려 예종1년) 어느 날 하음산 기슭 연못에 소낙비가 내리치더니 비가 그치고 연못에 상서로운 광채가 비치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한 노파가 신비하게 여겨 가까이 가서 보니, 돌로 만든 상자가 물위에 떠 있어서, 그 상자 속을 열어보았더니 귀여운 사내아이가 있었다. 그 노파는 이 아기를 궁중에 바쳤고 이에 왕은 기이하게 여겨 왕실에서 키우도록 했다. 그 아기의 이름을 노파가 봉헌했다 하여 성을 봉(奉)이라 하고 장래 국가를 도울 인재라 하여 이름을 우(우)을 붙인 봉우(奉우)로 정하니 그가 하음 봉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 봉씨들의 후손들은 주로 궁중 안팎에서 살아오다가 조선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다음해(1457년)에 단종의 궁중요리를 검사하는 사옹원병좌(사옹원별좌)에 있던 봉여해(奉汝諧)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의금부에 붙잡혀 화를 당했다. 그 뒤 봉씨(奉氏)의 후손들은 화를 면하기 위하여 모두가 전국으로 흩어졌고 그 일부 후손들이 증평읍 봉천리에 피난지로 정하여 살게 되었다. 그로부터 봉천리에 사는 봉씨들은 어린 단종에 대한 애절한 충성심과 흩여진 친족, 강화도 시조에 대한 지극한 효성심을 조석으로 망월산에 올라 지극 정성으로 발원하였다. 망월산(망월탑)은 우리 증평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조상과 부모들을 공경하는 효심의 상징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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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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