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증평군문화관광증평군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증평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증평으로 초대합니다.

서브비쥬얼 이미지

군지정문화재(향토유적)

  • Home
  • 역사/문화
  • 문화재
  • 군지정문화재(향토유적)
초계주씨 주명흠묘소 하마석 및 문인석(草溪周氏 周命欽墓所 下馬石 및 文人石)
  • 종별증평군지정문화재(향토유적) 제13호
  • 소재지증평군 증평읍 남차리 산45
  • 지정일2007-10-15

소개

증평읍사무소에서 괴산군 청안 방면으로 가다 증천교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청원군 초정 방면의 540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1.8㎞쯤에 남하1리(솔모루) 마을안내석이 있다. 이 안내석을 따라 남하3리 염실마을로 들어가면 마을 뒷산에 있다.

초계 주명흠(周命欽)은 서기 1600년 1월 8일에 출생했다. 공은 성장하면서 기력이 남보다 뛰어나 거인 장부가 되어 인조 때 무과에 급제했다. 1624년에 이괄의 난을 만나 임금님을 모시고 공주(公州)로 피난간 공로로 정난공신(靖亂功臣)이 되고 공주판관에 특제(特除)됐으며, 의주(義州)의 방위를 담당하면서 성을 쌓은 공적이 있었다. 1627년에 정묘호란을 만나 마포(麻浦)싸움에 출전하여 전공이 있어, 뒤에 백마산성(白馬山城)에서 도원수수성장(都元帥守城將)을 지냈다. 1636년에 병자호란을 만나 검천(儉川)싸움에 출전하였는데 크게 부상을 입고서 시체더미 속에 이틀 밤낮동안 묻혀 왼쪽 발과 장지(長指)가 얼어 떨어져 나갔다.

살아 돌아오니 조정에서는 공을 크게 기용하고자 포상하고 책훈(策勳)하려 했으나 노친을 봉야하기 위하여 관직을 사양하고 귀향하니 사람들은 모두 충효의 행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서기 1693년 7월 20일 94세로 생을 마쳤다. 주명흠의 묘와 묘에는 묘비와 문인석 1조, 상석 등이 있고 그 후손들의 묘소가 있으면 묘역 입구에는 가로97 ☓ 높이50 ☓ 두께60㎝의 하마석(下馬石)이 있다.

지도정보

공공누리 1유형 마크 증평군이 제공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담당부서 :  
문화유산팀
담당자 :  
정찬교
연락처 :  
043-835-4132
최종수정일 :
2021-11-15 18:04
(27927)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광장로 88 대표전화 043)835-3114

Copyright(c) 2018 by Jeungpyeong-gu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