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에게는 아둔함과 다독에 관한 여러 일화가 있습니다.하루는 하인이 고삐를 쥐고 끌고가는 말을 타고 가다가 마상봉한식(馬上寒食)이라는 시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마상봉한식 다음 구절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 때 말고삐를 쥐고 있던 하인이 대뜸 도중속모춘! 이라고 외쳤습니다. 하인의 말을 들은 김득신은 깜짝 놀랐습니다.
“마상봉한식(馬上達寒食) 도중속모춘(道中屬暮春) 말 위에서 한식을 만나니, 도중에 늦은 봄을 맞이했네... 그거 아주 좋은 시가 됐구나! 네 재주가 나보다 낫다. 내가 말고삐를 잡을 테니 어서 말에 타거라.”
“나리께서 날마다 외우시던 당나라 시가 아닙니까요. 하도 들어서 쇤네도 외웠습니다요." 하인의 대답에 김득신은 멋쩍은 웃음만 지어보일 뿐이었습니다.
김득신의 책과 시에 대한 집착은 식사시간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책에 빠지면 다른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김득신이 어쩌나 보려고 그의 아내가 양념장을 뺀 채 상추만 밥상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던 김득신은 눈치 채지 못하고 상추에 맨밥만 싸서 먹었습니다. 그런 김득신을 보며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백곡 김득신은 부족한 재능을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하여 17세기 조선 최고의 시인이 되었으며 과거에도 급제해 입신양명을 이뤄냈습니다.
마지막까지 책과 시의 세계에 빠져 살던 김득신은 1684년, 집에 들이닥친 도적떼에게 살해되어 81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환경과 재능을 탓하며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속에서, 백곡 김득신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의 글귀는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에 달려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