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 주요일화 6편 이미지 1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고해주세요](/images/kds/sub02/sub0204_img0601.png)
대기만성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백곡 김득신은 60대에 예조좌랑, 성균관 직강 등 여러 관직에 제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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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세에는 홍천현감에 제수됐으나, 시인으로는 뛰어나지만 일에는 소홀하다는 조정의 의견 때문에 지방관직에서 배제되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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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신은 31세부터 67세 때까지 36년 동안 고문을 반복 독파하고 <독수기>를 지었는데, 만 번 이하로 읽은 것은 아예 적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백이전은 일억 일만 일천 번, 노자전은 이만 번, 제구양문은 일만 팔천 번 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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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1억은 지금의 10만을 의미하는 단위니 <백이전>을 11만 번 이상 읽은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독서량은 부족한 재능을 극복하려했던 백곡의 성실함을 잘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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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전>을 얼마나 읽었던지 부인상을 당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곡소리에 맞춰 <백이전>을 읊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