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은 54세가 되던 해 모친상을 당합니다. 어머니는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지만 김득신은 무릎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 상을 치르면서 김득신은 다시 한 번 입신양명을 다짐했습니다. “내가 우둔하여 부모님 살아생전에 출세하는 걸 보여드리지 못 했지만 끝까지 노력하여 결실을 맺으리라."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다짐과 다르게 김득신은 계속 시험에 낙방했고 사람들은 시에 몰두한 것 때문에 출셋길을 망쳤다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59세에 이르러 드디어 문과 증광시 병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유로 본격적인 벼슬살이를 시작합니다.
성균관에 재직하면서도 독서에 대한 김득신의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책을 읽었던지 동료 유생들이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김득신은 고향에 취묵당이라는 서재를 지었는데, 그가 〈백이전〉을 1억번 넘게 읽었다고 하여 억만재라고도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