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 김득신은 1604년 10월 18일, 증평에서 부친 남봉 김치와 모친 사천목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했습니다.
김득신의 아명은 몽담이었는데, 이는 태몽에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 노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몽도 태몽이거니와 학식이 높고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난 자손이기에 부모는 김득신에게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모두의 기대 속에 밝은 미래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지만 김득신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게 됩니다.
그 당시에 천연두는 걸리면 열에 아홉이 죽을 정도로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었습니다.
다행히 김득신은 목숨은 건졌으나 몸이 나은 후 총기를 잃고 매우 아둔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유년기에 접어든 김득신은 외삼촌인 목서홈에게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그의 어리석음은 외삼촌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어허~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손자이자 높은 벼슬을 두루 지낸 김치 어른의 아들이 이렇게 아둔하다니... 참으로 낭패로다.”
김득신의 아둔함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십구사략 첫 단락인 26자를 사흘을 외우고도 첫 글자조차 입에서 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까마귀,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머리가 나쁜 김득신을 보며 주위 사람들은 비웃었고 집안 어른들은 차라리 공부를 포기시키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높은 학식과 훌륭한 성품을 지닌 아버지 김치는 김득신을 믿고 끝까지 두둔해주었습니다.